키르케고르는 말했다. "나는 걸으면서 최고의 생각에 도달했고, 걸어서 떨쳐버리지 못할 만큼 무거운 생각은 없었다." 니체, 루소, 칸트, 워즈워스 — 위대한 사상가들은 하나같이 걷는 사람들이었다.
산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일정한 리듬으로 몸을 움직이면 의식이 부유하는 상태가 된다. 목적지 없이 걸을 때 생각도 목적 없이 떠돌고, 그 떠도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연결이 일어난다.
자동차는 시속 60킬로로 이동하고, 비행기는 시속 900킬로로 이동한다. 하지만 인간의 감각은 시속 4-5킬로에 최적화되어 있다. 걸을 때 우리는 나뭇잎의 색깔을, 바람의 방향을, 흙의 냄새를 감각한다. 빠르게 이동하면 이 모든 것이 배경으로 사라진다.
레베카 솔닛은 '걷기의 역사'에서 말한다. "산업화 이후 인류는 점점 빠르게 이동하게 되었지만, 걷기의 속도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느림은 결핍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풍요다.
발터 벤야민의 플라뇌르(flâneur)는 도시를 걸어 다니며 관찰하는 사람이다. 목적 없이 도시를 걷는 행위 자체가 도시를 읽는 방법이 된다. 간판, 행인의 표정, 가게의 배치 — 걸을 때만 보이는 도시의 텍스트가 있다.
요즘 도시는 보행자보다 자동차를 위해 설계되어 있다. 넓은 인도, 벤치, 가로수 — 이런 것들이 있는 동네와 없는 동네의 삶의 질은 확연히 다르다.
산책과 독서는 닮았다. 둘 다 느린 행위이고, 둘 다 목적 없이 할 때 가장 풍요롭고, 둘 다 혼자 하는 일이지만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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